알튀세르 – 우리는 모두 이미 ‘호명’된 존재다
We Are All Already Interpellated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말한 “우리는 모두 이미 호명된 존재다”는 선언은 다소 숙명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사회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를 특정한 이름과 역할로 부릅니다. 학생, 부모, 직장인, 소비자, 팔로워… 우리는 이미 수많은 호명 속에 살아갑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 호명에 반드시 끌려다닐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호명을 자각하고, 거부하며, 새로운 이름을 창조하는 실천을 통해 우리는 주체로 설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개인적 일상에서 호명에 저항하는 구체적 방법—특히 자녀 교육, 직장 내 언어, SNS 활동을 중심으로—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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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녀 교육 속 호명: ‘모범생’과 ‘문제아’ 사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모범생’, ‘문제아’, ‘수학 천재’, ‘체육 못하는 아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 호명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아이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너는 공부 잘하는 애야”라는 말은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아이를 불안하게 만들고, “너는 산만해”라는 말은 자기 자신을 조절할 힘이 없다고 믿게 만듭니다.
실천적 방법
- 아이에게 결과 중심 호명을 피하고 과정 중심 언어 사용하기: “넌 똑똑해” 대신 “오늘은 네가 끝까지 집중했구나.”
- 아이 스스로 자신을 호명하게 하기: “나는 ○○한 사람이다”라는 문장을 스스로 만들어보게 하여 주체적 정체성을 강화하기.
- 비교 언어 지양하기: “형보다 낫다”, “친구보다 못하다”는 호명은 타인의 기준을 내면화하게 만듭니다. 대신 개인적 성장에 초점 맞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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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직장 내 언어 속 호명: ‘능력자’와 ‘낙오자’
직장에서는 성과와 직함이 개인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호명 수단입니다. “우수사원”, “낙오자”, “워킹맘” 같은 이름은 자유로운 개인을 특정한 역할에 가두고, 그 이름에 맞게 행동하도록 강요합니다.
실천적 방법
- 회의 자리에서 사람을 ‘성과로만’ 호명하지 않기: “지난달 실적이 저조한 A씨” 대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A씨”.
- 성별·가정상황에 따른 호명 피하기: “여직원”, “워킹맘” 같은 말 대신 ‘전문가’, ‘팀의 일원’이라는 보편적 호칭 사용하기.
- 자신에게도 직무 외 정체성 부여하기: 직장에서 실패했다고 해서 “나는 무능력자”라 호명하지 않고, “나는 도전 중인 사람”이라고 새 이름 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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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SNS 활동 속 호명: ‘좋아요’와 ‘팔로워 수’의 덫
디지털 플랫폼은 가장 교묘한 호명 장치입니다. 인스타그램은 ‘팔로워 수’, 유튜브는 ‘조회 수’, 틱톡은 ‘트렌드 참여’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규정합니다. 무심코 사진을 올리고 좋아요 개수를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플랫폼이 부여한 정체성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실천적 방법
- ‘좋아요’ 숫자가 아니라 ‘내가 나누고 싶은 의미’를 중심으로 게시물 작성하기.
- 일정 시간 SNS 비활성화(디지털 디톡스)하여 호명에서 벗어나기.
- 새로운 호명 만들기: 단순 소비자·팔로워가 아니라, “생각을 나누는 사람”, “함께 배우는 사람”이라는 자기 선언 남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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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호명에 저항하는 작은 훈련
호명을 거부하거나 바꾸는 것은 거창한 혁명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습관 속에서 가능합니다.
- 언어 바꾸기 – 스스로를 평가할 때 “나는 부족해” 대신 “나는 배우는 중이야”라고 호명하기.
- 다중 정체성 갖기 – 한 가지 호명에 갇히지 않기 위해, 직업 외에 동호회 활동·취미를 통해 다양한 정체성을 실험하기.
- 거부 선언하기 – 부당한 호명에 “그 말이 나를 전부 설명하지 않는다”고 직접 말할 수 있는 용기 갖기.
- 공동체적 변화 만들기 – 가정이나 직장에서 새로운 언어를 제안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호명 문화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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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론: 일상 속 주체성 회복
알튀세르는 우리가 이미 호명된 존재임을 강조했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호명을 인식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자녀 교육에서는 ‘문제아’ 대신 ‘탐구자’, 직장에서는 ‘낙오자’ 대신 ‘도전 중인 사람’, SNS에서는 ‘팔로워’ 대신 ‘생각을 나누는 사람’으로 우리 자신을 새롭게 부를 수 있습니다.
작은 언어의 변화가 곧 삶의 태도를 바꿉니다. 우리가 어떤 호명을 받아들이고, 어떤 호명을 거부하며, 어떤 새로운 호명을 창조할지를 결정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주체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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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볼 질문
- 나는 스스로 어떤 언어로 나를 호명하고 있는가?
- 오늘 하루, 억압적 호명을 거부하고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이름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