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르 – 절망은 자아를 알지 못하는 상태다
Despair is the state of not knowing oneself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단순히 우울이나 슬픔 같은 감정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절망을 인간이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알지 못하고, 더 나아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인식을 상실했을 때 나타나는 존재론적 상태로 규정했습니다. 즉, 절망은 단순한 순간적 기분이 아니라 삶 전체를 비추는 깊은 어둠입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자아를 찾으려는 시도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절망은 동시에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을 시대적 맥락에서 살펴보고, 현대 심리학과 SNS 시대의 자아 상실 문제와 연결하여 풀어내며, 우리가 일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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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자의 말
“절망은 자아를 알지 못하는 상태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무한과 유한, 자유와 필연의 종합체로 보았습니다.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동시에 시간과 조건에 묶여 있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균형을 망각하고, 자기 자신을 외부의 기준에 의해만 규정할 때 우리는 절망에 빠집니다. 그는 절망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눴습니다:
- 무지의 절망 – 자신이 절망 속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 무기력한 순응 속에서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 회피의 절망 –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것을 직면하기를 거부하고 다른 것에 몰두해 잊으려는 상태입니다.
- 반항의 절망 – 자아를 인정하지만 더 큰 존재(키에르케고르는 신이라 보았습니다)를 부정하고 오직 자기 힘만으로 살아가려는 상태입니다.
그의 말은 단순히 종교적 차원을 넘어, “자기 자신과의 진실한 관계 맺기”라는 점에서 지금도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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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대적 배경
키에르케고르는 19세기 덴마크에서 살았습니다.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고, 전통적 신앙과 공동체 질서가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제도화되었으며, 사람들은 형식적 신앙에 안주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개인이 자기를 잃어버리는 시대”로 보았습니다. 외적 성공, 사회적 지위, 물질적 풍요가 사람들의 가치를 대신 규정하던 시대였기에, 그는 자기 자신을 잃은 인간의 절망을 가장 큰 문제로 보았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모습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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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미
오늘날 현대인은 SNS, 소비문화,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갑니다. ‘좋아요’ 수, 팔로워 숫자, 직업적 타이틀이 나의 가치를 대신 증명해주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는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맞춰 만들어진 가짜 자아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절망은 바로 이런 상태입니다. 절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알지 못하는 근본적 단절”입니다.
예를 들어, SNS에서 타인의 화려한 삶을 보며 비교에 빠지는 순간을 생각해 봅시다. 실제로 미국 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의 보고서에 따르면, SNS 과사용은 우울과 불안 증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정보 과부하 때문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기를 규정하는 습관이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키에르케고르가 경고했던 ‘자아 상실의 절망’이 디지털 시대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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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대 심리학과 연결
현대 심리학에서도 자아와 절망은 중요한 주제입니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사람들이 자유와 자아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해 권위나 사회적 규범에 자신을 동일시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키에르케고르의 ‘자아를 알지 못하는 절망’과 같은 맥락입니다. 또한 빅터 프랭클은 로고테라피에서 삶의 의미를 상실했을 때 인간이 절망에 빠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늘날 임상심리학에서도 ‘자기 인식(Self-awareness)’은 정신건강의 핵심 요소로 강조됩니다. 자기 인식을 통해 우리는 감정을 더 잘 조절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주체적으로 설 수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절망 개념은 현대 심리학의 언어로 번역하면 ‘자기 인식의 부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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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SNS 시대의 자아 상실
SNS는 분명 소통의 도구이지만, 동시에 자아 상실을 가속화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합니다. 타인의 시선에 맞춘 사진, 비교와 경쟁, 인정 욕구의 무한 반복은 사람을 쉽게 절망으로 이끕니다. 실제로 ‘SNS 피로감(SNS fatigue)’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프랑스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보고되고 있는데, 이는 전 지구적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심리학자 세르주 티세롱(Serge Tisseron)은 SNS 사용이 ‘거울 자아’를 과도하게 자극해 자기 자신을 왜곡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일본에서도 ‘히키코모리’ 현상이 디지털 의존과 연결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죠. 이 모든 현상은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절망, 즉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상태와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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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실천 방법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절망에서 벗어나 자아를 알 수 있을까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안합니다.
- 자기 성찰 일기 쓰기 – 하루에 5분이라도 “오늘 나는 무엇을 원했는가? 무엇에 흔들렸는가?”를 적어보세요. 작은 기록이 쌓일수록 자아의 목소리가 선명해집니다.
- 디지털 디톡스 실천 – 일주일에 하루는 SNS를 끊고, 종이책을 읽거나 산책을 해보세요. 외부의 소음이 줄어들면 내면의 목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습니다.
- 실패 기록하기 – 실패나 약점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 안에서 배운 점을 기록해 보세요. 절망은 숨기려 할수록 커지지만, 마주할수록 자기 인식의 자산이 됩니다.
- 관계 속에서 ‘나’의 목소리 찾기 – 대화할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는 문장을 의도적으로 자주 사용해 보세요. 이는 타인의 기대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입장을 세우는 연습이 됩니다.
- 명상과 호흡 훈련 – 단 3분이라도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을 통해, 자아와의 연결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도 호흡 명상은 자기 인식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입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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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개인적 사례
저 역시 젊은 시절, 타인의 기대에 맞춰 공부와 진로를 선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공허했고, 작은 실패에도 무너졌습니다. 어느 날부터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매일 일기에 적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답이 잘 나오지 않았지만, 몇 달 뒤 제게 중요한 가치가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의미 있는 배움과 나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실패는 절망이 아니라 자기 발견의 기회로 다가왔습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절망을 통한 자기 인식’이 제 삶에서 조금이나마 경험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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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결론
키에르케고르의 절망 개념은 단순한 우울의 정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아와 단절된 상태,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깊은 존재론적 문제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절망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보았습니다. 절망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SNS 시대를 사는 우리는 외부의 기준에 휘둘리며 자아를 잃기 쉽습니다. 하지만 자기 성찰, 디지털 디톡스, 실패 기록하기 같은 작은 실천이 절망을 자아 발견의 계기로 바꿀 수 있습니다. 결국 절망은 우리를 삼키는 끝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문턱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 나는 지금 진짜 ‘나답게’ 살고 있는가?
– 외부의 인정이 아니라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