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하이데거 – 존재를 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Martin Heidegger – We Live in an Age Forgetful of Being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20세기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그는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에서 ‘존재’라는 주제를 철학의 중심에 다시 세웠습니다. 그가 남긴 말, “존재를 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Seinsvergessenheit)”는 단순한 추상적 철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디지털 사회, SNS의 홍수, 번아웃과 정신 건강 위기와 깊이 맞닿아 있는 현실적 진단이기도 합니다. 하이데거의 말을 따라가며, 어떻게 하면 ‘존재 망각’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고 삶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을지 살펴보겠습니다.
---
1. 존재 망각(Seinsvergessenheit)과 현대적 해석
하이데거는 철학의 역사가 점점 존재 자체를 묻지 않고, ‘사물의 속성’이나 ‘효율적 사용법’에만 집중하게 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본래 ‘존재’를 묻는 유일한 존재(현존재, Dasein)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근본 물음을 잊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존재 망각’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지금의 디지털 사회와 놀라울 정도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스마트폰 알림, SNS의 끊임없는 피드 속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하지만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사라집니다. 하이데거가 비판한 기술 지배 사회의 모습이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
2. 기술 문명과 철학의 위기
하이데거가 활동하던 20세기 초반,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과 급격한 산업화, 나치즘이라는 극단적 정치 현실을 겪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거대한 체제 속의 ‘부품’처럼 취급되었고, 과학기술은 인간을 해방시키는 대신 새로운 억압을 낳기도 했습니다.
하이데거는 기술이 단순히 편리함을 주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자원(資源)’으로만 바라보게 하는 틀(Ge-stell)을 만든다고 지적했습니다. 나무는 숲을 이루는 생명체가 아니라 ‘건축 자재’로, 강은 ‘수력 발전 자원’으로만 보는 사고 방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조차도 ‘노동력’이나 ‘데이터’로 환원되는 시대. 그는 바로 이런 시대를 “존재를 잊은 시대”라고 진단했습니다.
---
3. SNS와 번아웃, 존재 망각의 그림자
오늘날 SNS와 디지털 사회는 하이데거의 문제의식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공간입니다. SNS는 관계를 맺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존재를 ‘이미지화’하고 ‘성과화’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좋아요’와 ‘조회 수’에 맞춰 자기 존재를 포장합니다. 결국 존재는 사라지고, 남는 것은 기능적·도구적 ‘자기 연출’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번아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번아웃은 단순한 과로가 아니라, ‘존재 자체의 공허’와 맞닿아 있습니다. 일이 아무리 많아도 의미가 있다면 사람은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이 단순히 성과와 효율로만 환원되면, 인간은 존재적 에너지를 잃고 소진됩니다.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를 잊은 시대”는 곧 ‘의미 상실의 시대’, ‘심리적 공허의 시대’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번아웃을 ‘직업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증후군’으로 정의하며, 현대 사회가 개인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새로운 차원에 들어섰음을 공식화했습니다. 이 현상은 하이데거의 철학이 단지 학문적 사변이 아니라, 우리 삶을 설명하는 실질적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4. 존재를 회복하는 구체적 길
하이데거의 사상을 일상에 적용하려면, 존재를 다시 자각하는 작은 실천이 필요합니다. 다음은 디지털 사회 속에서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네 가지 방법입니다.
- 디지털 단식(Digital Fasting) – 하루 30분이라도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내려놓고, 존재 자체를 느끼는 시간을 마련하세요. 단순히 ‘기능 없는 시간’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존재를 자각하는 계기가 됩니다.
- 깊이 있는 만남 – 대화할 때 상대를 ‘정보원’이나 ‘인맥’으로 보지 않고, 존재 자체로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보세요. SNS의 팔로워 수가 아니라 눈앞의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 존재 회복의 시작입니다.
- 호흡과 몸의 감각 자각 –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계-내-존재’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세계 속에서 몸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잠시 멈추고 호흡을 느끼거나, 걸음을 천천히 살피는 행위는 ‘존재’와 연결되는 중요한 통로가 됩니다.
- 존재 질문 습관화 – 하루의 끝에 “오늘 나는 존재답게 살았는가?”, “나는 무엇을 단순히 기능적으로만 소비했는가?”를 묻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이 질문은 단순한 성찰을 넘어 ‘삶의 방향’을 바꾸는 힘을 줍니다.
---
5. 팬데믹과 존재 망각의 자각
코로나19 팬데믹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자유롭게 이동하고 관계 맺는 것이 당연했던 일상이 멈추자, 우리는 비로소 존재의 조건을 자각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동시에 디지털 기술이 삶을 지탱하는 도구가 되었지만, 또다시 ‘존재 망각’을 가속화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화상회의와 온라인 수업은 편리했지만, 인간적 만남의 깊이는 축소되었죠.
이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기술을 무조건 배제할 수는 없지만, 기술에만 종속될 수도 없습니다. 하이데거가 강조한 ‘존재 자각’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균형을 찾는 길잡이가 됩니다.
---
6. 존재를 다시 기억하는 용기
하이데거의 말, “존재를 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오늘날의 SNS 사회, 번아웃 시대를 정확히 설명해 줍니다. 기술과 편리함 속에 살지만, 정작 ‘존재’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작은 실천을 통해 존재를 자각할 때, 삶은 속도가 아닌 깊이로 바뀝니다.
오늘 하루,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하늘을 바라보거나, 가까운 사람과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어보세요. 그것이 곧 존재를 잊지 않고 사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거대한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일상 속의 작은 실천을 통해 존재를 회복하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 생각해볼 질문
- 나는 오늘 하루를 ‘존재답게’ 살았는가, 아니면 단순히 ‘기능적으로’ 흘려보냈는가?
- SNS와 기술 사용 속에서 내가 잊고 있는 존재의 순간은 무엇일까?
- 번아웃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존재 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